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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광주충장로점 등록일 조회수
제목 샤넬, J12 ‘연예인 시계’로 유명 2014-05-26 1544
세계 패션계에서 샤넬(Chanel)은 피라미드의 가장 정점에 있는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브리엘 샤넬이 1910년 프랑스 파리 캉봉가에 작은 모자가게를 열면서 시작된 샤넬의 드라마틱한 성공신화는 몇 해 전 개봉한 <코코 샤넬>이란 영화를 통해서도 매력적으로 그려져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명 패션하우스가 대체로 그렇듯 샤넬 역시 여성용 고급의류에서부터 각종 가죽제품, 향수, 화장품, 주얼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그들만의 패션 제국을 건설했는데, 20세기 후반부터는 시계 역시 샤넬의 명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샤넬이 처음으로 여성용 시계 컬렉션을 선보인 해는 1987년. 파리의 고급 쇼핑가인 방돔광장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은 프리미에르라는 시계가 바로 그것이다. 이후 1993년 스위스 라쇼드퐁 지역의 시계 케이스와 브레이슬릿, 다이얼 등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회사를 인수하면서 샤넬은 스위스산 시계 제조가 가능해졌다. 프리미에르의 성공에 고무된 이들은 1995년에는 정사각형 케이스에 특유의 퀼팅 패턴 브레이슬릿을 적용한 마트라세 컬렉션을 발표해 역시나 좋은 반응을 얻는다.

그리고 새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샤넬은 수석 디자이너 자크 엘뤼의 주도하에 본체 케이스는 물론 브레이슬릿까지 전체 하이테크 세라믹을 사용한 첫 남녀 공용 시계 컬렉션인 J12를 공개한다. J12라는 이름은 엘뤼가 여가에 취미로 즐기던 요트(12m 규격으로 참가하는 J-Class라는 국제경기 방식)에서 착안했다. 엘뤼는 199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남녀 공용 시계를 구상해왔는데, 현대인들의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가볍고 방수가 잘되는 실용적인 스포츠 시계를 제작하고 싶어했다.

2013년 신제품인 J12 문페이즈 화이트

하이테크 세라믹 시계의 대명사
수년간 이어진 연구 기간 중 엘뤼는 우선적으로 시계의 외장 소재에 집중했다. 그는 다른 메이커들이 많이 사용하는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골드류와는 차별화된 특별한 소재를 물색했고, 도자기 제조공법에서 착안한 하이테크 세라믹이 최종적으로 그를 매료시켰다. 하이테크 세라믹은 이미 앞서 연재에서도 소개한 라도(Rado)에 의해 1980년대 중반부터 시계 케이스 소재로 사용된 바 있다. 하이테크 세라믹 케이스나 브레이슬릿을 적용한 시계는 일단 무게부터 가볍고 열과 화학물, 스크래치(흠집)에 매우 강하며 피부 친화력이 좋은 데다 특유의 광택까지 있어서 세련된 느낌을 주는 등 장점이 많았다.

전체 유광 처리된 블랙 색상의 하이테크 세라믹으로 제작된 J12는 등장과 동시에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패션명가로서 오랜 세월 다져진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개성 강한 시계를 선호하는 20~30대 젊은 고객층을 유혹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 2002년에는 크로노그래프 기능의 J12 시계를, 2003년에는 화이트 색상의 J12 컬렉션을 추가로 발표해 인기에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J12 컬렉션을 바라보는 시계업계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수십년에서 100년 넘게 묵묵히 시계만 전문적으로 제조해온 전통적인 시계브랜드들이 보기에 샤넬의 J12는 패션시계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비쳐졌던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패션브랜드를 향한 시계업계의 암묵적인 선입견 역시 한몫 작용하고 있었다.

패션명가 최고의 베스트셀러
하지만 2005년 샤넬은 보란 듯이 하이 컴플리케이션의 대명사인 투르비용 기능의 J12 시계를 발표해 시계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J12 투르비용은 그간 J12 컬렉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도 한눈에 매료시킬 만큼 치밀하게 잘 만들어진 시계였다. 이후 2008년에는 139년 전통의 하이엔드 시계제조사인 오데마 피게와 협력해 J12 칼리브레 3125를 발표한다. 그리고 2010년에는 최상급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만 제작하는 오데마 피게 산하의 특별한 공방인 르노&파피의 도움을 받아 다이얼 상단에 크라운을 부착한 독창적인 형태의 수동 투르비용 시계 J12 레트로그레이드 미스테리우스를 공개해 시계업계에 또 한 차례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올해 바젤월드서 공개한 J12 플라잉 투르비용. 50개만 한정 제작되었다.

2000년 론칭 이래 브랜드 최고의 베스트셀러 컬렉션이 된 J12 기본 모델들도 사이즈 및 기능, 세라믹 케이스 색상이나 가공처리 상태, 다이아몬드 세팅 유무, 브레이슬릿 종류 등에 따라서 선택의 폭이 넓어져 더욱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국내 반응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0년대 중후반부터 비약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해 한때는 일명 ‘연예인 시계’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샤넬은 2010년에는 방수 성능을 300m로 향상시킨 전문 다이버 시계 J12 마린을, 2011년에는 하이테크 세라믹에 티타늄 합금을 추가해 오묘한 회색을 띠는 J12 크로매틱을, 2013년에는 지름 38㎜의 블랙과 화이트 색상의 하이테크 세라믹 케이스에 달의 운행을 표시하는 기능의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탑재한 J12 문페이즈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바젤월드에서는 J12 컬렉션에 케이스 직경 29㎜, 33㎜, 38㎜ 모델별로 각각 블랙, 화이트, 인텐스 블랙(매트한 블랙 다이얼), 블루 라이트(블루 색상의 야광 인덱스), 크로매틱 베이지 골드(샤넬 고유의 특수합금 소재) 등 수십종의 신제품들을 쏟아내 시계제조사로서도 샤넬이 얼마나 열정적인 브랜드인지를 충분히 입증해 보였다.

특히 J12 플라잉 투르비용은 샤넬이 최근 발표한 가장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시계 중 하나였다. 블랙 내지 화이트 색상의 하이테크 세라믹 케이스에 베젤은 18K 화이트 골드 소재를 사용하고, 다이얼에는 300여개의 다이아몬드를 세팅했으며,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다이얼 6시 방향에 드러나는 별 모양의 투르비용 케이지로 생전 코메트(혜성)를 행운의 상징이자 부적처럼 여겼던 가브리엘 샤넬의 유지를 이어받아 고급 무브먼트 제조 공방인 르노&파피 사가 샤넬만을 위해 독점 디자인한 것이다. 이제는 여러 브랜드에서 볼 수 있게 된 투르비용 시계도 샤넬이 만들면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브랜드의 개성과 기술력까지 한꺼번에 드러낸 격조 높은 시계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J12는 어느덧 샤넬 워치하면 떠오르는 대표 컬렉션이자 하이테크 세라믹 시계의 아이콘 반열에 올랐다. 라도가 하이테크 세라믹을 시계 외장 케이스에 가장 먼저 도입한 선구적인 메이커라면, 샤넬은 아직은 생소한 하이테크 세라믹 소재를 세계적으로 빠르게 대중화시킨 성취를 자랑한다.

샤넬은 패션계에서는 이견의 여지없이 가장 존경받는 브랜드이며, 창시자 코코 샤넬에서 따온 더블 C 로고는 세계 여성들을 열광시키는 로망의 상징이 되었다. 반면 시계제조사로서의 샤넬은 사람에 비유하면 이제야 비로소 청년기에 들어선 셈이다. 하지만 샤넬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지난 10년간 매해 진정성이 느껴지는 흥미롭고 다채로운 시계들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하이테크 세라믹 시계의 대명사가 된 J12는 샤넬을 시계업계로 이끈 견인차이자 세계적인 럭셔리하우스로서의 녹록지 않은 내공이 응축된 브랜드의 대표작이다.

<장세훈 타임포럼 시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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